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잡문

저승사자와 기사단장 죽이기

쟈니김 2017.11.12 16:06

저승사자를 본 적이 있다. 십여 년도 더 전에. 한창 자다가 가위눌리던 기간이었는데, 자다 눈을 뜨니 침대 옆에 서 있었다.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한 사내였는데, 갓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.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데 목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.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는 기분을 느끼며 공포를 만끽하고 있는데 나를 잘못 찾아왔는지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.

지금도 나는 저승사자를 봤던 그 방에서 매일 잔다. 가끔 집에서 혼자 잠드는 날이면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라 소름 끼치게 무서워질 때가 있다. 무라카미 하루키의 「기사단장 죽이기」는 딱 내가 봤던 그 저승사자 이야기다. 책을 읽는 내내 저승사자 생각이 났다. 내가 본 저승사자는 정말로 세상에 실재하는 존재였을까.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은 내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었을까.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존재였는데. 이걸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면 과연 믿어줄까. 끝내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경험을 계속한다.

소설은 영화 「매트릭스」의 세계관과도 유사한 구석이 있다. 내가 보고 듣고 겪는 이 세계가 정말 현실일까 하는 의문. 행인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매트릭스월드의 버그처럼 다들 한두 가지씩은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. 내가 저승사자를 본(봤다고 믿어지는) 것처럼 말이다.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을 읽은 것 같지 않다.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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