안 읽더라도 집에 책을 쌓아놓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. 그 얘기를 한 사람이 운전하는 차 앞으로 끼어들어서 급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. 켜켜이 쌓인 일상의 부산물과 늘어난 책들 때문에, 내 서재(라고 주장하는 작은 방)가 이제는 더 이상 책을 수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. 다 읽지 못한 책이 열에 아홉이라 버릴 수도 없다. 나 혼자 만족하겠다고 사재끼는 책 무게로 지은 지 22년도 더 돼가는 아파트에 하중을 더하고 싶지 않다. 고심 끝에 큰 결정을 내렸다. 전자책 리더를 사기로. 결승에서 맞붙은 건 크레마 그랑데와 페이퍼 프로였다. 페이퍼 프로는 리디북스 단말이라는 점이 상당한 장점이자 단점이었다. 얼마 전 밀리의 서재 구독권 이벤트로 체험을 해보고, 밀리의 서재를 사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..
저승사자를 본 적이 있다. 십여 년도 더 전에. 한창 자다가 가위눌리던 기간이었는데, 자다 눈을 뜨니 침대 옆에 서 있었다.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한 사내였는데, 갓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.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데 목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.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는 기분을 느끼며 공포를 만끽하고 있는데 나를 잘못 찾아왔는지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.지금도 나는 저승사자를 봤던 그 방에서 매일 잔다. 가끔 집에서 혼자 잠드는 날이면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라 소름 끼치게 무서워질 때가 있다. 무라카미 하루키의 「기사단장 죽이기」는 딱 내가 봤던 그 저승사자 이야기다. 책을 읽는 내내 저승사자 생각이 났다. 내가 본 저승사자는 정말로 세상에 실재하는 존재였을까. 검은 두루마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