저승사자를 본 적이 있다. 십여 년도 더 전에. 한창 자다가 가위눌리던 기간이었는데, 자다 눈을 뜨니 침대 옆에 서 있었다.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한 사내였는데, 갓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.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데 목소리가 나올 리 없었다.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는 기분을 느끼며 공포를 만끽하고 있는데 나를 잘못 찾아왔는지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.지금도 나는 저승사자를 봤던 그 방에서 매일 잔다. 가끔 집에서 혼자 잠드는 날이면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라 소름 끼치게 무서워질 때가 있다. 무라카미 하루키의 「기사단장 죽이기」는 딱 내가 봤던 그 저승사자 이야기다. 책을 읽는 내내 저승사자 생각이 났다. 내가 본 저승사자는 정말로 세상에 실재하는 존재였을까. 검은 두루마..
여러 운동 종목을 즐길 수 있는 ‘하남 스타필드 스포츠몬스터’에 갔다. 모처럼 육아에서 해방돼 바깥세상으로 나온 후배와 함께였다. 개학한 탓인지 꼬마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. 대신 대학 초년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많았다. 금요일이니까 수업이 없나보다 생각했다. 아이고 좀 쉬고 하자 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참 열심히도 몸을 움직였다. 우리는 차분한 종목으로 커피 내기를 했다. 농구 투바운드, 다트, 사격 세 가지 종목으로 3판 2승. 내가 두 판을 내리 졌다. 다트 연습게임은 내가 이겼는데 본게임에서 졌다. 2패를 먼저 했으나 마지막 사격은 내가 이겼다. 심지어 고득점 이벤트 대상에 포함돼 커피를 반값에 샀다. 다만, 상세히 설명하기엔 너무 구차할 것 같아서 승부에 대한 내용은 생략한다. 한참을 쉬고 났는데..
돌이켜 보니 그때부터다. 눈빛 주고받을 겨를도 없이 그 녀석은 별안간 뛰어들었다. 세계적 멸종위기종을 직접 본 행운보다는, 수많은 차가 오가던 왕복 8차선 고속도로에서 만난 불행이 더 컸다. 게다가 나는 규정 속도를 준수하고 있었다. 한밤 고속도로에서 그 녀석을 애도할 방법 또한 없었다. 해가 바뀐 지 며칠 안 된 날, 흉측하게 부서진 범퍼가 불길했다. 그때부터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. 홋카이도에는 사람보다 사슴이 많다. 야생 너구리와 여우도 많다. 그래서 친구는 꽤 여러 번 운전 요령을 강조했다. 차 앞에 야생동물이 뛰어들어와도 절대 핸들을 꺾으면 안 된다고. 진행방향 그대로 밀고 가야 내가 다치지 않는다고 말이다. 여러 번 마음에 새겼던 이미지 트레이닝 덕분일까. 나로서는 그나마 큰 화를 면했다. 다른..